"P양은 3개월 전부터 뾰족한 물건을 보면 자기의 눈이 찔리거나 다른 사람의 눈을 찌르는 생각이 드는데 이런 생각이 한 번 들면 머리에서 지우기 어렵다."
P 양의 증상은 정도와 빈도를 살펴보아야 하겠지만, 일단 강박장애에 가장 가깝다. 강박장애는 강박행동과 강박사고로 구분하는데 강박사고는 반복적으로 떠올라 사라지지 않는 생각이나 심상(그림)을 의미한다. 가장 일반적인 강박사고는 더러움이나 감염 혹은 자신의 부주의로 인해 다른 사람에게 상해를 입히는 것, 자신의 자녀를 살해할지도 모른다는 폭력성 혹은 성적 (sexual) 충동과 관련된 주제들이며 그 기저에는 두려움이 깔려 있는 것으로 보아 불안장애로 분류하다가 DSM-5로 개정되면서 현재는 '강박 및 관련 장애'라는 독립된 범주로 분류된다. 교통사고 혹은 도난 등 일상에서 언제든 일어날 수 있는 사건에 대한 걱정이 핵심 사안이라면 범불안장에 더 가깝다.
강박사고의 경우 떠오른 생각들이 처음에는 당사자에게 귀찮고 무의미하게 느껴지지만, 점차 무시할 수 없게 되고 급기야는 다른 생각이나 행동을 통해 억제하려는 시도를 하게 되는데 이러한 행동이 강박행동에 해당한다. 특정의 방식이나 규칙에 따라 행하는 행동 (예: 손 씻기) 혹은 정신적 행위 (예: 기도문 외우기, 주문 외우기) 등이 강박행동에 해당하는데 강박사고에 의해 유발되는 불편함 혹은 예상되는 두려운 사건이나 상황을 무력화하거나 억제하는 기능을 하게 된다. 가장 쉽게 볼 수 있는 강박행동은 점검 혹은 확인 (예 가스를 잠갔는지 점검), 세척과 소독, 숫자 세기, 정돈, 대칭 만들기 등이며 확신을 위해 다른 사람에게 확인하는 특징이 있다.
강박장애의 진단
강박장애의 진단을 내리려면 다음의 기준을 충족해야 한다.
A. 강박사고나 강박행동 혹은 둘 다 존재하며, 강박사고는 다음과 같이 정의됨.
1) 지속적으로 떠오르는 반복적인 생각, 충동 또는 심상이 장애 삽화의 일부에서는 침습적이고 원치 않는 방식으로 경험되며 대부분 현저한 불안이나 괴로움을 유발함.
2) 이러한 생각, 충동 및 심상을 경험하는 사람은 이를 무시하거나 억압하려고 시도하거나 다른 생각이나 행동을 통해 중화하려고 노력하는데 이를 강박행동이라 하며 강박행동은 다음과 같이 정의됨 .
1) 예를 들어 손 씻기나 정리 정돈하기, 확인하기와 같이 반복적인 행동과 기도하기, 숫자 세기, 속으로 단어 반복하기 등과 같은 심리 내적인 행위를 개인이 경험하는 강박사고에 대한 반응으로 수행하게 되거나 엄격한 규칙에 따라 수행함.
2) 행동이나 심리 내적인 행동들은 불안감이나 괴로움을 예방하거나 감소시키고 두려운 사건이나 상황의 발생을 방지하려는 목적으로 수행되는데 이러한 행동이나 행위들은 그 행위의 대상과 현실적으로 연결점이 없거나 명백히 과도한 것임.
B. 강박사고나 강박행동은 1시간 이상 시간을 소모하게 만들어 사회적, 직업적, 또는 다른 중요한 기능 영역에서 임상적으로 현저한 고통이나 손상을 초래함
C. 강박 증상은 물질의 생리적 효과나 다른 의학적 상태로 인한 것이 아님.
D. 장애가 다른 정신장애로 더 잘 설명되지 않음.
장애 관련 이론 및 원인
강박장애 증상은 위의 도식으로 설명이 가능하다. 확인하기 쉽지 않은 특정 유발자극에 의해 '이상한' 생각(침습적 사고)이 떠오른다. 이상한 생각이란 누구에게나 일어날 수 있는 일상적인 사고의 일부에 해당하지만, 당사자가 이런 생각을 위협적으로 평가하면서 큰 의미를 부여하게 된다. 예를 들어 "뾰족한 물건으로 아이의 눈을 찌르는 생각을 하다니 내가 미쳤나 봐"와 같은 해석이 정상적인 현상을 이상 현상으로 만들어 버리면서 불안감을 불러일으킨다.
생각이란 생각하지 않으려 하면 오히려 그 생각을 '감시'하기 위해 더 집중하게 되므로 오히려 더 쉽게 생각나는 경향이 있다. 특히 위협적인 생각은 더욱 그러한데 불안감을 해소하기 위해 뾰족한 물건은 모조리 찾아 치워버리면 불안감이 감소되므로 뾰족한 물건에 대한 긴장을 늦추지 못하고 지속적으로 뾰족한 물건, 더 나아가 상해를 입힐 수 있는 물건들을 강박적으로 더 찾게 된다. 이를 통해 악순환의 강박증 고리는 더욱 견고해지며 강박행동을 하는 동안에는 강박적인 행동을 하지 않아도 불안감이 줄어든다는 경험을 하지 못하게 되어 한 번 형성된 강박증이 지속된다.
강박장애의 치료
강박장애는 분류체계가 바뀌었어도 속성상 불안장애에 속하는 것으로 보고 증상으로서의 불안은 주어진 상황 자체보다 주어진 상황에 대한 당사자의 지나치게 부정적인 해석 때문에 일어난다. 따라서 강박장애의 치료 과정에서는 유발자를 파악하고 떠오르는 '이상한' 생각에 대한 부정적인 해석을 수정하는 인지치료가 진행된다. 아울러 강박사고 혹은 강박사고가 일어나는 상황에서 유발되는 불안감이 강박행동 없이도 줄어들 수 있다는 경험을 하게 되는 '노출 치료'를 병행하여 다각적으로 악순환의 고리를 끊는 시도가 진행된다. 불안감이 커서 당사자 혼자 수행하기 어려우므로 처음에는 강박장애를 유발하는 불안자극에 직면할 때 전문가가 동행하고 점차 혼자서 행하는 연습을 하게 된다.
강박장애는 가벼운 장애가 아니므로 증상의 정도가 심하면 약물치료를 병행하는 것도 고려해 보는 것이 바람직하다.